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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린(麒麟)의 한담, 또는 축복  

  

 

    나는 한국에서는 이름이 ‘기린’이다. 한국에서 ‘기린’이라 함은 목이 긴 실재 동물이다. 내가 굳이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한국에서 ‘기린’이라고 불리는 실재의 나는 중국 사람들은 ‘챵징루(长颈鹿)'라 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기린’이라는 존재는 실재가 아니라 상상 속에 살고 있는 존재이다.

    오늘날 중국인들에게 물어 보면 대부분이 ‘기린’과 ‘챵징루’는 생김새부터 다른 별개의 존재라고 대답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데 옛날 한 때, 아프리카 땅에서 중국에 온 나 ‘챵징루’가 ‘기린’이라고 불리고 칭송되었던 아름다운 일이 있었다. 중국인들은 그 때 나를 통해 신화를 실재의 무대로 불러내었고, 또한 실재를 신화의 세계로 이끌었다.

     중국인들의 아름다운 상상 속에서 신화와 실재가 호환되었던 것이다. 명나라 영락황제 때의 일인데 그에 대한 이야기는 곧 하겠다.

     어쨌든 그 뒤로 나는 내 자신이 ‘챵징루’ 인지 ‘기린’ 인지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었다. 더구나 한국인들이 실재의 나를 ‘기린’ 이라고 부르면서부터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그런데 근래 언제부턴가 내가 그러한 정체성의 혼란을 벗어나게 되었는데, 그것은 중국인들이 수백 년의 오랜 침묵 끝에 북경 올림픽을 통해 다시금 꿈을 실재로, 실재를 꿈으로 변환시키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어느 날 퍼뜩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꿈과 실재는 둘이 아니다. 신화와 실재도 둘이 아니다. 나 ‘챵징루’와 ‘기린’도 둘이 아니다.

     나를 ‘不二’의 깨달음으로 이끌어 준 중국인들에게 감사를....

     나는 여기에서 나 자신을 그냥 ‘기린’이라고 자칭하겠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기린’과 ‘챵징루’의 형상에 마음이 산란해 지지 말기를 바란다.

     그날 내가 중국 땅에서 누렸던 인기와 찬양은 세상의 어떤 수퍼스타도 당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고 말한다면 아마도 잘 믿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다.

     중국의 역사서 명실록 (明实录)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명실록에 따르면 나 ‘기린’이라는 존재가 처음으로 중국 땅을 밟은 것은 1415년 11월이라고 한다. 吕震이라는 이름의 예부상서(지금의 외교부장관에 해당)가 황제에게 이렇게 주청하였다. “‘마린국(麻林国)’이 조공해온 기린이 곧 도착할 것이옵니다. 기린이 도착하는 날 신하들을 모두 불러 같이 축하함이 좋을 듯 하옵니다.”마린국은 지금으로 말하면 동부 아프리카의 케냐 혹은 탄자니아 지역이라 한다.

     나 ‘기린’은 그 먼 곳에서 정화(郑和)장군의 배를 타고 인도양을 지나 중국 땅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물론 마린국의 사절과 함께였다. 명실록은 내가 그해 11월 19일 날 남경에 도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난생 처음 와 본 중국 땅은 초목만 무성한 나의 고향 땅과는 모든 것이 달랐다. 한마디로 별천지였다. 황갈색 나뭇잎들이 떨어져 뒹굴고 있는 길 위를 나는 안내자와 함께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연변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 ‘기린’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놀랐다. 그러나 더욱 놀란 것은 내가 우람한 성곽의 봉천문(奉天门)에 이르러서였다. 황제가 그곳에 친히 나와 나를 환영하는 굉장한 의식을 주재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두 눈을 끔벅거렸다. 그러나 분명히 중앙의 황금빛 옥좌위에 앉아 있는 이는 영락황제였다. 그 앞으로는 많은 문무 대신들이 갖가지 비단 유니폼을 걸쳐 입고 도열해 있었다. 또한 어림군(御林军)의 호위를 받으면서 각국 사절들도 입장을 하고 있었다. 내가 봉천문을 막 통과하자 도열한 신하들이 일제히 머리를 조아리며 어떤 소리를 내었다.

    명실록에는 그 소리가 “陛下圣德广大,被及远夷,故致此嘉端" 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개 ‘기린’에 불과한 내가 황송하게도 그런 과분한 대접과 찬양을 받게 된 데는 깊은 내력이 있다. 중국인들의 마음속에서는 예로부터 ‘기린’이라는 존재가 가장 신령스럽고, 상서로운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기린’은 고대로부터 중국인에게는 '凤','龟','龙'과 함께 四灵중의 하나였고 동물의 圣者라고 칭송되었다. 중국인들은 나의 태생에 대하여 말하기를 용과 소가 교접하여 나온 것이라고도 하였다. 또한 얼굴은 길고, 사슴의 몸에 소의 꼬리를 하고 있으며 콧잔등 위에 뿔이 나있다고 묘사하기도 하였다. 또한 많은 문사들이 글을 지어 나를 찬양하였는데, 나 ‘기린’은 황제의 덕이 천하만방, 새나 곤충에까지도 미칠 때 나타난다고도 하고, 가장 상서로운 일이 있을 때에만 출현하는 존재라고도 하였다. 그러한 내가 어느 날 중국에서 처음으로 영락 황제 앞에 그 모습을 나타냈으니 얼마나 굉장했겠는가.

     나 ‘기린’은 지상에서 가장 기다란 목을 가지고 있는데 한국의 어떤 여류시인은 그런 내가 측은해 보였던지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라고 읊기도 했지만, 나는 사실 기다란 목 때문에 남다른 장점 하나가 있다. 시야가 넓고 멀리 본다는 점이다. 중국인들이 ‘高瞻远瞩’이라고 하는 것은 나 ‘기린’의 안광을 두고 한말 같다. 그런 내가 보기에 600년 전 나 ‘기린’으로 하여금 중국 땅을 밟게 했던 정화 시대의 눈부신 서광이 다시 중국 땅에 찾아온 것이 확실하다. 이 지상에서 가장 풍부하고 아름다운 상상력을 가진 중국인들을 오늘, 올림픽을 꼭 일년 앞둔 오늘 하루만큼이라도 마음껏 찬양하자.

 생각해 보라, 그들이 아니었다면 이 지상의 어느 누가

종이와 나침반과, 화약과, 인쇄술을 고안해 낼 수 있었겠으며,

그들이 아니었다면 어느 누가

누에고치에서 실크를,

거친 흙속에서 도자기를 뽑아낸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또 생각해보라, 그들이 아니었다면 이 지상의 어느 누가

아프리카 초원의 일개 동물에 불과하였던 나를

그토록 신령스럽고 아름다운 존재로 미화시킬 수 있었겠는가.

또 생각해 보라.

    그들이 만든 물건과 그들이 만든 이야기와 무협 영화와 그들의 비상하는 상상력으로 이 세상이 얼마나 풍요로워졌는지를  그런 중국인들이 이제 다시 일어섰다. 일어서서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나 ‘기린’은 축복하고 싶다, 그들의 발걸음을.일찍이 600년 전 위대한 항해가 정화가 세상에서 제일 큰 배에실크와 차와, 도자기를 가득 싣고 대양을 건너 세계만방을 찾아 가우호 교류를 세계화 하였던 중국,

    당시 유럽을 다 합쳐도 당할 수 없었던 유일한 초강대국이었으면서도 지상에 단 한 뙈기의 식민지도 만들지 않았고,단 한명의 노예도 잡아 오지 않았으며,단 한 웅큼도 남의 나라 것을 약탈해 오지 않았던빛나는 전통을 안고 있는 중국인들이, 이제 세상을 향해 평화와 공존을 말하지 않는다면 누가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들이 이제 다시 일어섰다. 일어서서 소란스런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다.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을 향해 같이 걷자고 손을 내밀고 있다.그 손길위에, 마주 잡은 우리들 모두의 손길위에 축복이 내리길,오늘로부터 꼭 일년 후인 2008년 8월 8일 그 날 위에 온 세상의 축복과 광명이 쏟아져 내리길,

    그리하여 우리의 아시아가 굴욕과 어둠을 벗고세상의 초록빛으로 다시 일어서기를 기원하는 뜨거운 염원 속에 나의 마른 붓을 흥건히 적셔 이 글을 쓴다.

 

                                               2007년 8월 7일 자정에

                                                주칭다오 대한민국 총영사 김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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