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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와 역사적 인물

TRSWCM2006-05-08 14:14

 

역사문화와 역사적 인물
산동성은 우수한 중화문화의 혈통을 이어나간 곳으로서 유구한 중국역사에 길고 휘황한 폐지를 남겼다. 산동성은 華山, 太行山의 동쪽에 있다고 하여 얻은 이름이다.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0년-기원전 221년)에 제(齊)나라, 노(魯)나라 2개   제후국이 중국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하여 산동지역을 齊魯지역이라  고도하며, 현재 산동성은 약칭을 魯로 표기하고 있다. 산동성은 중국문화의 중요한 발상지 중의 하나이다. 역사가 유구하고, 문화가 발달하며, 산수가 아름답고,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태어난 곳이다.
  이곳에는 공자가 태어났고, 태산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으며, 황하강은 이곳을 통해 바다로 유입된다.또한 이곳은 최초의 중국 문자와 강단(강연 장소)이 있고, 중국 최초의 도시국가와 가장 오래된 장성이 있다. 이곳은 또한 도자기와 비단의 발원지이다.산동성은 예로부터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 중의 하나였다.
주요역사 사건이 그 다음과 같다:

          ㅇ 서주(西周)시대(기원전 11세기- 기원전 771년)
            - 약 40여개 제후국이 있었으며, 그중 제나라와 노나라는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중국고대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침
            - 魯나라는 주공에게 봉한 제후국으로 曲阜에 도읍을 정함
            - 齊나라는 강태공에게 봉한 제후국으로 臨淄에 도읍을 정함
          ㅇ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기원전 770년-기원전 221년)
            - 제나라와 노나라를 중심으로 여러 제후국이 공존하여 오다가 전국시대 말기 노나라가 초나라에 의해 멸망되고 제나라의 세력이 강화
        - 제자백가(諸子百家)중 공자, 맹자, 손자, 묵자, 관자 등은 산동성 출신
          ㅇ 진(秦)시대(기원전 221년-기원전 207년)
            - 제나라도 진시황에 의해 멸망되고 중국이 통일됨
          ㅇ 한(漢)시대부터 북송(北宋)이전(기원전 206년-1127년)
            - 이때까지도 산동성은 독립적인 행정구역으로 인정받지 못함
          ㅇ 금대(金代)(1115년-1234년)
            - 전국이 19개로(路)로 분할되어 山東東路와 山東西路가 설치되면서 산동성이 최초로 행정구역으로서 인정받음
          ㅇ 근대 반식민지 역사 (19세기말-1945년)
            - 1893년 청(淸정)나라는 독일의 무력에 굴복, 산동성을 독일의 영향권에 편입시키는 내용의 불평등조약 체결
            - 1919 년 파리강화회의에서 산동성에 대한 구독일의 권리를 1차세계대전 승전국인 일본에 양도하도록 결정하자, 이를 반대하는 5.4 학생운동이 일어남
            - 1922 년 중국정부 산동성에 대한 주권 회복
- 1938 년 일본은 무력으로 산동성 강점, 1945년 주권 회복
역사적 인물
          ㅇ 文聖 孔子
        - 孔子 의 고향 제녕 곡부(曲府)에는 아직도 孔廟(공자사당), 孔府(공자 가택), 孔林(공자선산) 등 이른바 삼공(三孔)이 보존되어 있으며, 공자를 기념하기 위한 국제공자문화제가 매년 9월말 개최되고 있음
          ㅇ 武聖 孫武(孫子)
        - 孫子의 고향은 빈주, 동영 일대로 현재 빈주에는 孫子兵法城이, 동영에는 역사박물관내 손무사당이 있음
          ㅇ 기타
           - 孔子와 孫子외에도 書聖 王羲之, 神醫 扁鵲, 군사가 諸葛亮, 건축가 魯班, 문학가 李淸照, 辛棄疾, 蒲松齡이 배출됨
        - 王羲之의 고향인 臨沂에는 옛집을 복원한 기념관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