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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곡부

TRSWCM2006-05-08 14:34

세계유산 곡부

곡부는 산동성 중남부에 위치하며, 일찍이 고대 周 나라와 漢 나라의 봉지였고 800여년 동안 魯나라의 수도였다. 중국인의 조상인 黃帝, 유가학설의 창시자인 孔子 및 공자 사상을 발전시킨 孟子, 중국 공예의 창시자인 魯班, 유명한 애정 희곡인 《도화선》의 작가인 孔尙任 등이 모두 곡부에서 태어났다.
  

곡부에는 현재 110여 곳의 역사 문화 유적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 3공 (孔廟, 孔府, 孔林)은 세계적 문화유산이다. 孔廟와 북경의 故宮(紫禁城), 태안의 岱廟는 중국의 3대 고대 건축물이다. 공부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귀족 저택이고, 공림은 중국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계승된 가족 묘지이며, 魯國의 옛 성터는 "동방의 지하 박물관"이라고 불리며, 少昊陵은 "중국의 금자탑"으로 여겨진다.

곡부는 중국 정부가 인정한 역사문화 도시인 동시에 우수한 관광 도시이다. 1994년에 孔廟, 孔府, 孔林은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자연문화유산 목록》에 편입되었다.

곡부는 중국 유가사상의 창시자인 공자의 고향으로 중국의 유가사상은 물론 세계 유교사상의 발원지이므로 "동방 성인의 도시"라고 일컫는다.

공자는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가 중의 하나로 그가 창시한 유교문화는 중국 전통문화의 핵심이 되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중국인의 인품 특징 등 측면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의 사상은 중국뿐 아니라 해외에도 영향력을 끼쳤다. 일찍이 한나라 때부터 당나라 때까지 유교사상은 당시의 한반도, 일본, 베트남 등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중국과 인접하여, 유교의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유교사상은 인간을 근본으로 삼아 현실을 중시하는데 이는 한국의 전통사상과도 공통되는 점이다.

유교는 한국인의 가치관, 생활 습관, 법률 등에 무시할 수 없는 역할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학문은 유교의 기초 위에서 부단히 발전하여 독특한 실학 사상을 만들어 내었다.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는 종묘 제례와 성균관 석전대제 등의 행사를 통해서 유교 문화가 한국 전통 문화에 미친 영향을 엿볼 수 있다.

곡부는 중국 유학 및 세계 유교의 발원지이고, 도시 전체가 유교 문화적 분위기가 농후하다. 곡부에 가게 되면, 여러분은 도시 전체에 3층을 초과하는 건물이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공자의 저택인 곡부의 높이가 2층으로 그다지 높지 않기 때문에 유교에서의 공자 위상을 알리고 곡부의 문화적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하여 도시 내의 모든 건물의 높이를 곡부보다 초과할수 없도록 규정하였기 때문이다.

공묘는 공자의 옛집을 사당으로 삼고, 황궁의 규격에 맞게 건설되었으며, 중국 3대 고건축물 중의 하나로서 세계 건축물 역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공묘는 부지면적이3백 묘(약 2만 평), 형세가 웅장하며, 짜임새 있는 구조를 하고 있다. 앞 뒤로 9개의 전각과 뜰이 있고, 제각기 독특한 특색을 보이고 있다. 그 중에서 대성전과 규문각이 핵심 건물이다. 대성전은 공묘의 주요 건축물로 휘황 찬란하며 형세가 웅장하다. 대성전 앞 통로에 위치한 10개의 대리석 기둥에는 여의주를 가지고 노는 두 마리의 나는 용이 세밀하게 조각되어 있다.고대 중국에서 용은 하늘과 황제를 상징했다. 따라서 황궁 대웅전에만 용을 새길 수 있었고 다른 건축물에는 용의 도안을 사용하는 것을 금하였다. 하지만 공묘 안에는 정밀하게 새겨진 飛龍이 있는데 이는 공자의 지위가 중국에서 매우 높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공자 학설의 주요 사상은 당시 사회발전 및 국가 통치에 대단히 유익했기 때문에 그의 사상은 지배집단의 적극적인 숭상과 군주의 특별한 지지를 받았다. 저택을 이처럼 화려하고 웅장하게 건설할 수 있었던 사람은 중국 역사상 공자가 처음이자 유일한 인물이었다. 대성전 앞에 "杏壇"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이는 공자가 노년에 학문을 강의하던 곳이다.공묘 안에는 13채의 碑亭(비석을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정자)이 있고, 53개의 거대한 비석을 포함한 총 800여 개에 달하는 비석이 있다. 서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공묘 내에서 비석에 새겨진 필체가 가져다 주는 감동을 마음껏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공부는 공자의 후대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이 곳의 규모는 웅대하여 누각과 대청이 총 463칸이나 되는 역사상 가장 큰 장원이었다. 공부는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랜동안 지속된 봉건 귀족의 장원인데, 중국 봉건시대 관청의 전형적인 건축물로 "천하 제일의 가옥"이라고 불린다.

공림은 공자와 그의 가족들의 전용 묘지로 세계에서 가장 큰 가족 묘지이다. 여기에는 무덤이 10만 여개, 역대 石議 85쌍, 묘비 400기, 교목 42000여 그루가 있다. 이 곳은 2400여 년간 재배되고 보호 받아 온 송백이 무성하고 고목 나무가 하늘 높이 치솟아 있는 인공 원림을 이루고 있다.노나라 애공 16년(기원전 479년)에 공자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제자들이 이 곳에 공자를 묻고 장사를 지냈다. 공자를 뒤이어 이 곳에 장사를 지내는 후손들이 계속해서 늘어남으로써 공원의 면적도 점차 늘어나 명나라 말기에 이르러서는 1800여묘까지 확대되었고, 강희 23년(1684년)에는 임야 면적은 2941.9묘에 달했다. 현재 공림의 둘레는 5591미터이고 총면적은 183.33 헥타르이다. 이처럼 규모가 방대하고, 기세가 웅대한 가족묘지는 공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었다. 묘지 안에 있는 묘비는 각각 하나의 전설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듣노라면 황홀해 지고 눈이 번쩍 뜨인다.

문화 유적 외에 공부의 요리 또한 국내외 여행객들을 매료시키는 주요 요인이다. 공부의 음식은 색, 향, 맛을 모두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음식마다 독특한 양식과 재미있는 고사와 전설이 있다. 그 중에서 어떤 것은 황제가 직접 이름을 지어준 것도 있다. 공부 음식은 중국 각지의 요리 기술을 받아들이고, 각 유파의 장점을 융합시켜 점차적으로 형성되었다. 곡부에 여행을 와서 공부 움식을 먹어보면, 그 음식의 진미를 느낄 뿐만 아니라 중국의 전통 문화도 깊이 체험할 수 있다.

2000년의 세월 동안 중국 각 왕조의 제왕과 재상 그리고 문인 학자들이 끊임없이 이 곳에 찾아와서 공자를 알현하며 지식을 탐구하였다. 최근에는 해외 여행객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특히 홍콩, 한국, 일본 등에서 많은 사람들이 큰 관심을 가지고 곡부를 찾아와 "삼공"(공부, 공묘, 공림)의 성대한 모습에 감탄하고, 박식하고 심원한 공자의 사상과 문화 유산을 탐구하고 있다. 오늘날 곡부는 고대 동방 문화를 탐방하고 학문을 탐구하는 이상적인 관광지로 되고 있다.